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김대중 납치사건 배후 - 꼬꼬무

반응형

김대중 납치사건 배후 - 꼬꼬무

1973년 8월8일 낮 일본 도쿄 한 호텔에서 김대중이 납치된다. 대낮에 일본의 수도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에서 대한민국의 야당 지도자가 납치가 되었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 김대중 납치사건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당시 김대중을 납치했던 사람들은 대한민국 중앙 정보부 공작원들이라고 한다. 풀려난 직후 동교동 자택에서 김대중은 기자회견을 한다. 그리고 129시간의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오늘 꼬꼬무 김대중납치사건 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이 되었다. 공작단에게 납치되어 끌려갔고 손발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채 중앙정보부의 공작선 용금호에 감금된 김대중, 오른 손목과 발목에 수십킬로그램짜리의 돌을 매달고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라 라는 무시무시한 납치한 사람들이 대화속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생각이 든다.

 

 

 

 

한참후에 밝혀진 공장 계획의 증언에 따르면 야쿠자를 이용해서 김대중 납치와 암살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죽이지는 않았으며, 납치사건 후 129시간 후에 의사 진찰 후 동교동 자택에 내려주었다고 한다.

 


동교동 자택에 내려줄때도 눈을 가린채 바로 소변을 보라고 하고 소변을 보는 동안 납치한 사람들과 차는 바로 가버렸다고 한다. 왜 소변을 보게 했냐면, 그 소변을 보는 동안은 눈을 가린 안대를 내릴 수가 없으므로 그랬다는 것이다.


 

김대중 납치사건의 배후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야당의 지도자인 김대중이 납치가 되었다. 그이유가 무엇일까. 과연 누가 시킨일일까. 배후가 누구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그때는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10년 썩은 정치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내새우며 출마를 했던 김대중, 유신체제하에서 해외로 나가 거의 유일한 반유신 활동을 했었던 김대중, 과연 납치사건의 배후는 누구일까. 정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였을가? 하지만 꼬꼬무에서도 결국 납치사건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때 관련되어있던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미 많이 노쇠하여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있겠지만 여튼 그때에 있던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정도라면 일반사람은 해외로 나가 사는 것을 택했겠지만 당시 김대중은 끊임없이 한국에서 정치를 이어가고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족적을 남기고 서거하시게 되었다.

 


김대중 납치사건의 배후가 정말 누구일지 느낌이 아닌 진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미 5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일인데 말이다.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는 그날이 왔으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오늘 꼬꼬무에서는 정말 예민 할 수있는 고 김대중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뤘다, 우리가 기억하는 김대중 대통령의모습과 불편한 다리의 모습은 그때 당시에 다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대통령이 되어 많은 업적은 남겼으며, 우리나라 IMF라는 역사상 힘든 시기에 대통령직을 수행한 대통령 이다.

 

 

 

반응형

loading